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 창문이나 담벼락에 붙어있는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띄면 반가움에 앞서 먼저 가슴부터 울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원술랑, 벽오동 심은 뜻은, 두만강이 잘있거라, 가야의 집, 안시성의 꽃송이, 울어라 열풍아..
눈 앞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영화 포스터를 바라보며 포스터가 모두 몇 개나 붙어 있는지 (포스터 갯수를 보면 영화를 며칠동안 상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네 집에서 영화를 상영하는지,전쟁영화가 몇 편이나 되는지를 헤아리며 마치 영화 속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벌써부터 영화 속에
흠뻑 빠져들고 맙니다.
문짝 양 옆에 포스터를 잔뜩 붙인 시커먼 제무시(GMC)가 마을을 누비며 영화 안내를 시작합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서생면민 여러분 그동안 안녕하십니까?
본 부산 합동영화사에서 오늘밤 여러분들을 모실 영화, 이민자, 최무룡 주연, 피리불던 모녀고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영화, 시네마스코프 총천연색, 피리불던 모녀고개.. 아.. 어찌하여 최무룡과 이민자는 헤어져야만 했던가..
오늘밤 할머니 할아버지 손자 손녀, 손수건 지참하시고 손에 손잡고 오세요..
기대하시고 고대하시라,
피리불던 모녀고개.."
라디오조차도 귀하던 그 시절, 일년을 통하여 겨우 몇 번 볼 수 있는 영화야 말로 마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행사였습니다.
마을 한 구석 공터나 밭 한가운데 말뚝을 박고 천막을 빙 둘러 만든 가설극장 앞에 가보면 주렁주렁 전구가 달려있고 노랗게 빛나는 전깃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별나라에 온 것 마냥 어린 가슴들은 그저 황홀감으로 가득찻습니다.
타작마당 뒤쪽의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쉴새없이 발동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돈이 있건 말건 가설극장 앞은 언제나 동네 조무래기들이나 마을 어른들로 시끌벅적합니다.
어른들과 함께 들어가거나, 혹은 부모님께 얻은 용돈으로 표를 사서 천막 안으로 들어갈 때면 표를 사지 못해 극장 주변을 지키는 '기도'의 눈치를 흘끔거리면서 서성이는 동네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누구누구가 어떠어떠한 방법으로 돈 안주고 영화를 보았노라는 무용담으로 온교실이 시끄러웠지요.
극장측에서 손님들을 위해 멍석(덕시기)을 깔아놓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맨 땅 그대로였습니다.
마을사람들은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러 올 때 짚단이나 시멘트 포대를 가지고 와서 앞 쪽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냥 뒤에 서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상영 시간이 지나도 영화는 좀처럼 시작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관객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엉덩이에 쥐가 나고 슬슬 조급증이 생길 무렵이면 기다리던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 옵니다.
"지루한 시간 오랬동안 기다렸습니다.
지루한 시간 오랬동안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뚜~~"하는 벨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집니다.
지금까지 소란스럽기만 하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지는것도 이때였습니다.
촤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먼저 '대한늬우스'부터 시작합니다.
대한늬우스를 통하여 우리는 서울을 비롯한 바깥 세상의 풍경도 보고 대통령과 영부인도 봅니다.
창경원의 원숭이도 구경하고 영화배우 김희갑, 김지미가 일일 교통안내를 하는 모습도 봅니다.
대한늬우스의 마지막은 언제나 '월남소식'으로, 머나먼 이국땅 월남에서 우리 국군용사 아저씨
들이 베트콩과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리도 놓고 도로를 건설하는 활약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어서 기다리던 '본영화'가 시작됩니다.
화면은 지직거리며 비오듯하고 바람이 불 때마다 스크린은 춤을 춥니다.
갑자기 화면이 하얗게 변하면서 필름이 끊어지면 여기저기서 "에이~"하는 소리와 함께 '휘익 휘익' 휘파람 소리도 들려오지만 이내 조용해집니다.
영화 한 편 볼때마다 서너번씩은 늘 그랬기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탓이겠지요.
영사기 기사의 재빠른 필름 붙이는 솜씨에 영화는 이내 돌아가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또 요란한 소리를 내며 한쪽 모퉁이에서 돌아가던 발동기마저 멈춰 서 버립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 시간짜리 영화는 두 시간이 지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주인공이 포악한 악당의 흉계에 빠져 갖은 고생을 다 할 때면 여기저기서 여자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래도 남자들은 울음을 참느라 헛기침을 하고.. 마지막에 가서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찿아낸 적의 가슴을 향해 통쾌한 복수의 칼날을 꽂을때면 모두들 너나 할 것 없이 요란하게 손뼉을 치며 마치 자신의 일인양 기뻐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기 일 이십 분 전이면 둘러쳐진 극장의 천막이 걷혀 올려집니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에서 천막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그림자와 소리만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많은 조무래기들이 우루루 안으로 몰려 들어갈 때가 바로 이때였습니다.
영화가 끝나면 '행운권추첨'이란 행사가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로 수건이나 냄비, 다라이, 밥그릇 등이 경품으로 주어졌는데 언젠가 일등 상품으로 재봉틀이 주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난게 아닙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면 어제 본 영화 이야기로 교실 안은 온통 시끄럽습니다.
영화를 본 친구는 어젯밤 영화를 보지못한 친구들을 모아놓고 침을 튀기며 요란하게 설명합니다.
주인공의 표정과 목소리까지 흉내내며 줄거리를 줄줄 외웁니다.
"신영규이가 아인나 허장가이가 배반해가지고 일본놈한테 잡혔다가 탈출할 때 야~ 그때 실감나데.영화 자알 됐더라.." 하면서 "짜잔~" 소리와 함께 특수효과까지 동원합니다.
영화 본 것보다 다음날 친구의 이야기 듣는게 더 재미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어쩌다 시청각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영화를 상영할 때가 있었습니다.
대부분 반공영화나 사극영화였는데 주로 전날 밤에 마을에서 상영한 영화였습니다.
이교시 수업이 끝나면 일학년 교실과 이학년 교실을 막고있는 벽을 트고 학생들이 집에서 갖고온 이불로 남쪽 창문을 가립니다.
전교생이 한 곳에 모여 바닥에 앉은채로 영화를 보았는데 얼마나 비좁고 덥던지, 또 누군가가 내뿜은 풍시마로 인하여 한 손으로 코를 막고 또 한 손으로는 땀을 훔쳤습니다.
오인의 해병, 철조망, 성웅 이순신, 율곡과 그 어머니, 해병특공대..등 학교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소풍이나 운동회 때와 버금가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이따금 울산에서 찝차를 이용하여 마을까지 영화 선전를 하러 올 때도 있었습니다.
하루에 두어 번 부산으로 오가는 버스 가운데 막차 한 대는 한성상회에서 하루를 묵고 (도마레) 다음 날 출발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버스를 대절하였습니다.
저녁에 마을 선배님들이 버스의 한 팀인 운전사, 조수, 차장과 함께 멀리(?) 울산 태화극장까지 버스를 타고 영화를 보러가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린다이'라는 홍콩 여배우가 주연배우인 신영균을 실제로 사모한 나머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던 영화 "달기", 그리고 김상국의 노래로 유명한 영화 '불나비' 등이 선배님들이 버스 대절하여 울산까지 가서 관람한 '원정영화'였습니다.
전쟁영화를 보고나면 우리는 언제나 영화에 나오는 장면을 이야기하며 골기장이 있는 남산에서 영화에서 본 그대로 실습을 하였습니다.
김대성 선배(22회)가 우리들의 대장이었고 우리들은 대장님의 명령에 따라 나무로 만든 총을 들고 논밭을 가로지르며 '공격앞으로'와 '돌격앞으로'를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예전의 우리 부모님네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슬픈 영화를 좋아하셨던지요.
아마도 당신들의 고단한 삶을 영화를 통해서나마 위안받고 싶어하셨던게 아니었을런지..
《구름은 흘러도》
일본의 어느 광산촌에서 아버지마저 잃고 어린 4남매는 뿔뿔이 헤어지는데 일기를 쓰는 일로 동생들이 보고 싶은 마음을 달래던 언니의 이야기가 우연한 기회에 책으로 출판되어 전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게되고 마침내 4남매가 다시 모여 살게 된다는 재일동포의 눈물어린 순정실화 영화..
《피리불던 모녀고개》
행복한 가정주부였던 이민자는 뜻하지 않은 실수로 사랑하는 남편, 딸 자식과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한 것이어서 딸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어머니는 딸을 그리워합니다. 두 모녀 사이에는 기구한 비운이 숱하게 가로 놓이지만 마침내 모녀는 눈물과 기쁨의 재회를 합니다.
《에밀레종》
《저하늘에도 슬픔이》
국민학교에 다니는 이윤복은 가난한 가정에서 살아갑니다. 노름을 즐겨하는 아버지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리지만 윤복이는 어린 동생들을 위로하며 구두닦이로 연명하면서 그날그날의 일을 일기로 적어나갔습니다. 마침내 그의 일기가 담임 선생님(신영균)의 호의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어 그 책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가고 또한 각계로부터 온정이 답지합니다. 이제 아버지도 새사람이 되고 집을 나갔던 어머니도 돌아와 잘 살게된다는 실화.
한동안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든 영화였지요.
동요 '따오기'가 영화 속에 몇번 나왔는데 무척 애처럽게 들렸습니다.
《쌍무지개 뜨는 언덕》
《외나무다리》
사랑하는 여자 김지미를 동네 건달 허장강이 겁간하여 사랑이 깨지고, 그 일로 실성을 한 최무룡을 그의 어머니 황정순이 등에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넌다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이 영화를 보지는 않았지만 동네 김말용 선배(21회)가 노래와 함께 얼마나 실감나게 이야기 해주던지 본 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영화입니다.
《육체의 길》
화목한 가정의 가장인 김승호는 깡패인 허장강의 앞잡이가 되어 나쁜짓을 일삼는 김지미를 동정한 나머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함께 유랑서커스단의 일원으로 전전하다가 마침내 여자는 죽고 자신도 폐인이 되어 버립니다. 훗날 화목하던 옛집을 찾아가지만 차마 가족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다시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납니다.
이발소에 붙어있던 이 포스터를 처음 봤을때 '육체'라는 단어에 묘한 느낌을 받은 기억이..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의 학비마련을 위해 기생이 된 홍도(김지미)는 오빠의 친구와 사랑하게 되어 그의 부모 반대를 물리치고 결혼하지만 그가 유학을 떠난 뒤 홍도는 시집에서 쫓겨 납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가 부호집 딸과 약혼식을 하는 장소에 달려간 홍도는 흥분하여 그 부호집 딸을 찌르고.. 살인현장에 달려 온 경찰관이 된 오빠(신영균)에 의해 쇠고랑이 채워집니다.
《천안삼거리》
엄앵란의 부친이 당쟁에 말려 참변을 당합니다.
그녀는 같은 처지가 되어 지금은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고 있는 총각 신성일과 사랑을 맺습니다.
그 무렵 음탕한 이예춘이 그녀를 탐한 나머지 말을 듣지 않는 그녀를 투옥하고 괴롭힙니다.
때마침 암행어사(신영균)의 행차가 있어 그들이 구출됩니다.
《화랑도》
난생 처음 본 총천연색 영화라 더욱 잊을 수 없는 영화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의 그 감동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흑백영화를 보다가 총천연색 영화를 첨 본다는건, PC로 따진다면 XT에서 펜티엄으로의 업그레이드 쯤 되겠지요.
사랑하는 적국(敵國)의 공주를 못잊어 야반에 공주의 방으로 들어 가다가 그만 근위병들에게 붙잡힌 몸이 되어버린 주인공.
심한 고문을 받으며 서서히 고개를 들자 얼굴에 나타나는 수많은 고문의 흔적들..
(총천연색이였기에 실감이 훨씬 더했습니다)
그때 극장 안 앞뒤 여기저기서는 동네 여자들이 어마~ 어마~! 하며 차마 못보겠다는 듯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숙이고 난리였습니다..
《동백아가씨》
섬처녀인 엄앵란는 서울서 온 대학생 신성일과 사랑하여 임신하게 되자, 그를 찾아 서울로 갑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유학을 떠난 뒤였고, 거리를 전전하던 그녀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지만 결국 '동백빠아'의 여급이 되어 살아 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옛애인인 신성일을 만나나, 그는 이미 다른 여인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기에 그녀는 아이를 그에게 넘겨준 뒤 다시 섬으로 돌아갑니다.
《언제나 그날이면》
북한에서의 그들은 마음으로 밖에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열성당원의 딸인 김혜정과 봉건
지주계급의 아들인 신영균은 너무나도 신분이 상반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마음 대로 만날 수조차없이 안타까이 사랑하던 두 사람은 6.25를 당하고 다시 만날 기약없이 영영 헤어지고 맙니다. 그후, 신영균을 찾아 월남한 김혜정은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데 이 어찌된 운명의 장난입니까? 영영 헤어진 줄 알았던 신영균을 우연히 만나게 되지만 이미 남의 아내
가 된 그녀를 남자는 모르는 척 외면해야만 했습니다..
《성웅 이순신》
《석가모니》
《해병특공대》
《고개를 넘으면》
김동원과 최은희는 학창시절부터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각각 다른 사람과 결혼하였지만 서로를 늘 잊지 못합니다. 두 사람의 사이에는 사랑하던 시절에 낳은 딸애가 있었는데 그 딸애를 다리로 하여 중년이 된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결합한다는 영화였습니다.
《바보 온달》
간악한 신하들의 흉계에 빠져 신변에 위협을 느낀 평강공주(김지미)는 궁궐을 빠져나와 도주하다가 산 속에서 움막을 짓고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있는 온달(신영균)의 도움을 받습니다.
어려서부터 울기를 잘하던 평강공주를 달래기 위해 왕(김승호)은 이다음에 크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하던 바로 그 온달이었습니다.
비록 바보스럽고 무식하기만한 온달이지만 그가 큰 그릇임을 알아 챈 평강공주는 온달에게 정성을 다하여 글과 무예를 가르키고 마침내 부부가 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훌륭한 무사가 된 온달로 하여금 궁궐로 들어가 간악한 무리들을 없애고 변방에 쳐들어온 여진족을 무찌르게 합니다.
《대지여 말해다오》
《명동44번지》
《맨발의 청춘》
《안시성의 꽃송이》
안시성의 젊은 장수 김석훈에게는 사랑하는 여자 김혜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구려의 충신인 연개소문의 딸이 또한 김석훈을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당나라 태종이 30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기 위하여 안시성을 쳐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김석훈의 용맹과 김혜정의 지혜 앞에서 30만 대군은 물러갑니다..
진하 나릿가에서 전날 '울어라 열풍아'를 보고 그 다음날 이 영화를 보았는데 한 해 선배인 23회모 선배가 영화를 보던 학생들의 이름을 적어 교장선생님께 일러 바치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조회 때 김충조 교장선생님의 호명으로 전부 앞으로 불려나가 혼쭐이 나기도 했습니다..
《두만강아 잘있거라》
김석훈과 박노식은 일제 치하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만주로 떠나 독립군이 됩니다..
이때 사업자금이 쪼들리던 허장강은 자금을 마련해 볼 생각으로 일본군에게 독립군의 비밀을 밀고하고 이 때문에 김석훈의 어머니(황정순)는 고문을 당하다 죽음을 당합니다.
김석훈은 어머니의 죽음을 부른 것이 그의 연인인 엄앵란의 탓이라 생각하고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녀는 오해를 풀고자 김석훈을 찾아 나서고 결국 그는 오해를 풉니다.
독립군은 일본헌병대와 전투를 벌이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황해와 박노식, 그리고 엄앵란은 죽은 시신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잃어버린 조국을 찾기 위해 몸을 불사를 것을 다짐합니다.
그 당시 영화 제목 가운데 유달리 강(江) 이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압록강아 말하라, 흑룡강, 송화강의 삼악당, 양자강, 두만강아 잘있거라, 낟동강 칠백리..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은? .. 백두산, 한라산, 역도산..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강은? .. 압록강, 낙동강, 허장강.. 하던 기억이 납니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해서 북진을 거듭하던 해병대 용사들이 중공군의 역습을 받아 포위망을 좁혀오는 중공군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이고 두 명(장동휘, 최무룡)만 살아 남고 전원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됩니다.
전투에 참가하는 분대원들에게 꼬마 전영선이 "오빠, 총알 맞으면 안돼. 그러면 죽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모녀기타》
악극단 가수였던 이민자는 남편 신영균이 징용에 나간 후 소식이 끊어지자 딸인 태현실을 데리고 술집을 전전하며 노래를 부르며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남편을 만나게 되지만 이미 남편은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기에 딸을 맡기고 돌아섭니다.
《지옥문》
지금으로부터 2천 9백여년전, 멀리 인도의 왕사성에서 일어난 이야기.
대부호인 박상장사는 왕사성 성주인 아수리(이예춘)의 횡포로 재산몰수와 함께 추방명령을 받는데, 이에 그의 처(이민자)는 아수리에게 찿아가서 왕사성을 떠나지 않게 해달라고 청원하러 갑니다만 도리어 아수리에게서 몸을 빼앗기고 맙니다.
지아비를 욕보였다는 죄를 쓰고 그녀는 지옥의 나락으로 빠지는데, 아들 라복(김운하)은 목련존자가 되어 백일기도 끝에 어머니를 지옥에서 구출하고 극락으로 인도합니다..
김운하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구하러 지옥문 앞에 서서 팔을 번쩍 들고 "지옥문아 열려라!"하던 모습과 지옥에 빠진 이예춘이 해골을 먹는 모습등이 그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 대단한 화제를 일으켰던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오인의 해병》
한국전쟁에 참전한 해병소위 신영균는 일선의 소대장을 자원하여 전선으로 갑니다..
중공군과의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병사들이 참호 속에서 지쳐갈 즈음, 상부로부터 적의 탄약고 폭파 명령이 하달됩니다. 이에 소대장 신영균을 비롯한 박노식, 최무룡, 곽규석, 황해 등 5명으로 구성된 특공대가 조직되어 폭파 임무를 완수하나 최무룡만이 혼자 살아서 돌아옵니다.
《남과 북》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전방 최전선에 북한군 장교 신영균이 투항해 옵니다.
따듯이 맞이한 최무룡 대위는 그에게서 북측 정보를 제공 받으려 하지만 그는 여자를 찾아 달라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그런데 신영균이 찿아 달라고 하며 내미는 사진을 보니 그 여자는 바로 지금의 자기 아내(엄앵란)가 아니겠습니까? 과거에 아내에게 남자 이야기를 들었으나 현실로 나타나리라곤 생각조차 못하고 신영균과 그녀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번민하던 최무룔은 아내와 아이를 신영균에게 데리고 갑니다. 둘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옛이야기들을 나누지만 엄앵란은 자신은 이미 결혼을 했고 남편이 최무룡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놀란 신영균은 최무룡을 불러달라 하고 최무룡을 만난 뒤 그녀를 떠나보낼 굳은 결심을 합니다.
한편, 괴로워하던 최무룡은 전투에 지원하여 전투 중 사망하고, 그 소식을 전해들은 신영균은 충격을 받고 뛰쳐나가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맙니다.
예전 'KBS 이산가족찿기' 행사때 많이 불리워졌던 노래,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가 이 영화'남과 북'의 주제가입니다.
《오형제》
《광야의 호랑이》
중일전쟁 말엽, 광야의 호랑이로 불리우는 신영균은 전쟁중 가족과 동지를 잃은 김혜정을 구하고 그녀와 힘을 합쳐 중국군에 수용된 한국인 범죄자 허장강, 황해, 서영춘, 김운하, 장혁과 함께 폭파대를 구성하고 용문교 폭파 작전에 나섭니다.
교량을 폭파하는 도중 출동한 일본군과의 교전 끝에 김혜정을 포함한 5인의 폭파대는 장렬하게 전사하고 광야의 호랑이만 살아남습니다.
작전 도중 모두가 일본군에 의해 체포되었을때 일본군인이 고문을 시작합니다.
"광야의 호랑이가 누구냐?"
대답이 없자 한 차례 채찍을 휘두른 뒤 재차 물었을때 한 사람씩 차례로 대답을 합니다.
"광야의 호랑이는 나다." "아니다, 나다." "나다." "나다.."
학교에서 급장이 물었습니다.
"오늘 주번은 누구냐"?
"오늘 주번은 나다.."
"아니다, 나다.."
한동안 많이 써먹던 대화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를 서생여인숙 (16회 박천수)에서 상영할 때 부산에도 아직 상영 안한 영화라해서 긴가민가 했는데 (실제로 화면이 아주 깨끗하였습니다) 그 뒤 한 두어달쯤 지나고 부산일보 영화광고란에 '개봉박두'란 큼직한 글자와 함께 '광야의 호랑이' 포스터가 실려 있었습니다.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기차가 지나가는 시골마을에서 남편이 없는 최은희는 시어머니와 딸 옥희(전영선)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날 예전에 남편의 친구였던 초등학교 교사인 김진규가 하숙하러 들어오게 됩니다.
옥희의 아버지는 옥희가 태어나기 한 달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옥희는 그 손님을 무척 따릅니다.
최은희와 김진규는 서로 사모하는 사이가 되지만 당시의 윤리적 관습 등으로 인해 마음 속에 연모의 정을 묻어둔 채 김진규가 서울로 전근가면서 헤어집니다.
소박한 어린이 옥희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이 절제된 감정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수채화같은 작품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영화였습니다.
얼마전에 타계한 신상옥 감독에게 어째서 거장(巨匠)이란 칭호가 붙는지 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빼어난 영화입니다.
동네에 영화가 들어올 때는 보름달을 피해서 들어왔습니다.
달밝은 밤이면 화면이 선명하지 못한 때문이지요.
성동여인숙, 서생여인숙, 비석걸 창고마당, 구 농협 앞, 연화할머니 댁, 우체국 앞의 보리밭,신동진 후배집, 나루터 백사장..
영화를 상영하던 공터와 마당 넓은 집들의 모습이 눈에 스칩니다.
전깃불은 물론이거니와 라디오조차도 드물던 그 시절, 어쩌다 한번씩 들어오는 영화는 그렇게 우리 시골마을을 들뜨게 만들었고 영화를 보고 온 그날 밤은 잠자리에 들어 방금 본 영화에 나왔던 배우들의 모습과 장면들, 그리고 줄거리를 되새기며 단꿈에 젖었습니다..
글 사진 : 고영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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