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수있는 여유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진주영심 2020. 12. 28. 09:36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수많은 국민이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전월세를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에겐 기회가 있었다.

스물다섯 번의 잘못된 정책을 내놓으며, 단 한 번만이라도

국민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검찰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온 나라가 다시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들끓고

온 국민이 산산조각 난 듯 분열되지 않을 수 있었다.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총장의 지휘권과 직위를

박탈하지 않아도, 친정부 인사를 내세운 공수처의

설립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검찰 개혁을 충분히 이뤄낼 수

있었고 국회는 이미 동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온 나라가 검찰 개혁과 공수처 설립에 몰두해 결국

백신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코와 입을 드러낸

너와 내가 마주할 수 있었고 폐업 직전의 이웃들이

밝게 웃으며 우리를 맞이할 수 있었다.

지긋지긋한 마스크와 식은 배달 음식에서,

우리는 조금 더 일찍 벗어날 수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마스크를 벗어던지는 아이와 더는 씨름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난한 자들이 더 가난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부유한 자들이 더 부유해지지 않을 수 있었다.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를 시샘하고 질투하며,

집 없는 자가 집 있는 자의 안부 전화에 수신을 망설이는,

먼 마음들 사이에서 우리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공원화된 단지와 충분한 면적의 지하주차장을 갖춘,

넓고 깨끗한 신축 아파트에 너와 내가 함께 살 수 있었다.

차 걱정 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니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아이의 등에, 놀라 소리치지 않을 수 있었다.

힘 있는 자들이 법 뒤에 숨어들어 으스대지 않을 수 있었다.

힘 없는 자들이 법 앞에 움츠러들어 숨지 않을 수 있었다.

전전 대통령이, 전 대통령이 그러했듯, 지금의 대통령도

죄가 있다면 언제든 법의 심판을 받게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최소한, 법을 위해 법을 파괴하는

정치인을 섬기는 국민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우리는 정의로운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었으며

살기 좋은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허락한 것은 13평의 미분양 임대 주택과

기본 소득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안전이었다.

우리에겐 많은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있었다.

너는 울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출처]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작성자 조은산

 

塵人 조은산의 기록 : 네이버 블로그

당신의 모든 기록을 담는 공간

blo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