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원규<시인·지리산생명연대 운영위원장>
바야흐로 휴가철에 접어들자 지리산도 곳곳이 만원이다. ‘민족의 영산’이자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은 예로부터 방장산이라 불릴 정도로 불교의 역사문화와 관련이 깊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예나 지금이나 전국적으로 가장 원성이 자자한 곳은 지리산 천은사다. 성인 1인당 1600원을 내야하는 문화재관람료 때문이다. 몇 명의 청년들이 지키고 있는 매표소 앞에는 차량행렬이 길게 늘어서 정체가 된다. 이는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등산객들이 “천은사를 보러 온 게 아니니 통행세에 불과한 관람료를 절대로 낼 수 없다”며 다투는 시간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급기야 차량 앞을 가로막으면서 고성이 오가는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모성의 산’인 지리산과 청정 도량인 천은사 입구가 일촉즉발의 아수라 지옥으로 변하는 것이다. 삼복염천에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참으로 오래된 풍경이다. 국립공원 입장료와 함께 징수할 때도 그랬고, 공원입장료가 폐지된 뒤 그 자리에서 관람료를 받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은사측의 말대로라면 시암재에서 내려올 때도 매표소를 설치하고 관람료를 받아야 한다. 여전히 송사중인 ‘통행세’의 부당성 문제 이전에 원칙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지리산에서 유독 대한불교 조계종 19교구 본사인 화엄사와 그 말사인 천은사, 그리고 연곡사가 ‘악명’이 높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천은사와 연곡사는 사찰 입구가 아니라 다른 마을과 연결돼 있는 지방도를 막고 관람료를 징수하는 바람에 원성을 사고, 화엄사는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뒤에 곧바로 관람료를 대폭 인상해 3000원을 받으면서 일부 관광객들에게 불교에 대한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861지방도는 지난 군사정권 시절에 천은사 경내지에 군사작전용 도로로 강제 개설하였다가 관광도로로 확포장한 것이다. 따라서 천은사측은 “문화재관람료(현재 조계종에서는 문화재구역 입장료라 칭하고 있음)를 징수하는 것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합법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현재로서는 합법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합리적이거나 상식적인 것만은 아니다. 천은사측이 구례군민들의 신분증을 확인한 뒤 그냥 보내주거나 최근 뱀사골이나 달궁 등 남원지역 주민들에게는 천은사 주지 도장이 찍힌 통행증을 나눠주는 등 임시방편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바람에 오히려 원칙과 형평성의 문제가 더욱 불거지는 형국이다.
문제는 정부의 담당부처와 조계종단의 의지 부족이 아닐 수 없다. 방관과 방치하는 것을 넘어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매표소를 도로에서 천은사 입구로 옮기지 않는 이유도 사실은 매년 입장료 수입이 5억원 정도에서 1억원 정도로 떨어지는 것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정부가 보전해주지 않는 한 쉽게 타협이 될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관광객 입장에서 볼 때 천은사가 해마다 4억 원이라는 부당이익을 챙긴 것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억지를 부리자면 천은사는 시암재에도 매표소를 설치해 쌍방향 모든 관광객들에게 관람료를 받아 ‘무단점거 혹은 통행세’라는 평판을 감수하면서 형평성이라도 유지하든지, 아니면 정
861번 지방도를 패쇄해 지리산을 보전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지리산이 초입부터 불쾌한 산으로 남아서는 안 될 일이다. 천은사의 문화재관람료는 누가 보아도 ‘통행세’에 가깝다. 그리고 그동안 국민들에게 징수한 문화재관람료의 구체적인 수입규모와 그 집행내역을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조계종단도 각성해야 한다. 다시 한 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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