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도는 섬에서 바라 보는 금산의 절경과 앵강만의 풍광 못지 않게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벽련(碧蓮). 말 그대로 짙고 푸른 연꽃, 3천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의 마을 바로 앞 삿갓처럼 생긴 섬이 바로 노도이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 지 308년이 지난 지금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 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조선 후기 정치가로서, 문신으로서, 효자로서,
소설가로서, 한글애호가로서, 시인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 서포의 발자취가 그 고뇌스런 일생과 함께 서려 있는 남해의 작은 섬 노도는 유배 문학의 산실이다.
남해는 서포 김만중 외에도 기묘 사회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4대 서예가로 불리는 자암 선생은 남해를 찬양하는 경기체가 "화전별곡" 을 그의 배소 노량에서 지었다.
그리고 후송 유의양은 남해의 유적, 절경, 세시풍속 등을 기행문체로 쓴 "남해문견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해는 이 외에도 주로 금산을 노래한 한시를 많이 남긴 남구만, "남천잡록" 의 저자 김용 등 많은 유배객이 다녀간 곳이다.
5년 전 다녀 가고 다시 찾은 노도는 문학의 섬 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많은 것이 세로와 지고 바뀌었다. 무엇보다
서포 문학관과 구운봉야외전시장. 사씨남정기야외전시장 공원이 조성 되어 있고 정자들이 있어 휴식과 볼거리를 제공
한다. 섬 이라는 특성에도 생태 연못도 있다. 노도 선착장에서 서포문학관 구운몽야회전시장 사씨남정기야외전시장
그리움에 언덕 정자 까지 돌아 오는데는 약 3.8KM 정도 1시간 30정도 소요 된다. 아쉬운 점 은 가까운거리 백련항-노도
정기편 이있지만 배편이 많지 않아서 다소 불편한 점과 문학섬이라는 점을 감안 한다면 중간 중간 쉼터가 부족하고
서포문학관이 완공 된 듯 하지만 아무런 안내도 없이 휴관 이다. 교통편은 백력항은 작은 마을이라서 주차 공간이 협소하고 마을까지 대형 버스 진입이 않된다. 따라서 단체 탐방객은 마을 뒤 도로에 하차하여 백련 선착장 까지 걸어야
한다.
*남해 백련항-노도 정기편 배의 정원이 12명이다.
노도섬 투어로드. 약 6.5km 휴식포함 2시간 30분.
백련마을 길이 좁고 별도 마을주차장 외 별도 주차장이 없다
백련마을 백련-노도 도선대합실
노도 안내도
다소 배편이 많지 않아서 아쉽다.
건너 보이는 섬이 노도 백련항 출발 10분이 않되는 거리다.
뒤로 보이는 섬이 남해 백련항
노도 문학의섬 이라는 상징 조형물
마을길로 하여 탐방로가 잘 되어 있다.
백련항 노도 정기편 선박 정원 12명. 다소 부족 한 듯 하다.
윗 길이 허묘 가는길
얼음이라는 열매가 많이 열려 있네요
서포문학관. 휴관 중
건물 만 덩그러니 관리 하는 사람도 찾는 이도 없는 이 곳. 노도 문학의 섬 김만중 문학관
우리라도 잠시 쉬어 갑니다.
김만중 유배 지라던 서포 초가 새롭게 다시 지어 진 듯 하다.
산길로 가면 구운몽 야외전시장 쪽 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뒷길로 가는 좋은 길도 있지만 내려 올 때 오기로 했다.
구운몽 야외 전시장 조형물 어딘 가 중국에 모습이 조금은 있는 듯 하다. 나만 그런건지. ..
조각물 하나 하나에 설명이 있는데 일단 간단히 보고 폐스~
생태 연못과 정자가 있어 잠시 쉬어 가도 좋은 곳 이다.
정자가 조금은 작아서 많은 사람이 찾을때는 좁아 보인다.
한 잔 같이 합시당~~
소설에 배경은 우리나라 있데 그림은 아무리 봐도 중국을 연상케 하네~~
그리움에 언덕에 있는 정자. 규모가 제법 크고 조망이 좋다.
남해가 보인다
서포 초가와 서포문학관
김만중 허묘 가는길
다시 정기편을 타고 백련항으로...
노도를 떠나면서 노도는 작은 섬이라서 마을은 이 곳 뿐이다.
백련마을 크지는 않지만 물놀이와 바나나 보트를 탈 수도 있다.
김만중
조선의 소설가
본관은 광산. 자는 중숙, 호는 서포.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金長生)의 증손자이자 김집(金集)의 손자이다. 아버지 익겸은 병자호란 당시 김상용을 따라 강화도에서 순절하여 유복자로 태어났다.
1665년(현종 6)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정언·부수찬이 되고 헌납·사서 등을 거쳤다. 1679년(숙종 5)에 다시 등용되어 대제학·대사헌에 이르렀으나, 1687년(숙종 13) 경연에서 장숙의 일가를 둘러싼 언사 로 인해 선천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왕자(후에 경종)의 탄생으로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기사환국이 일어나 서인이 몰락하게 되자 그도 왕을 모욕했다는 죄로 남해의 절도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가 이렇게 유배길에 자주 오른 것은 그의 집안이 서인의 기반 위에 있었기 때문에 치열한 당쟁을 피할 수 없어서였다. 현종초에 시작된 예송에 뒤이어 경신환국·기사환국 등 정치권에 변동이 있을 때마다 그 영향을 심하게 받았다.
그는 많은 시문과 잡록, 〈구운몽〉·〈사씨남정기〉등 의 소설을 남기고 있다. 〈서포만필〉에서는 한시보다 우리말로 씌어진 작품의 가치를 높이 인정하여, 정철의〈관동별곡〉·〈사미인곡〉·〈속미인곡〉을 들면서 우리나라의 참된 글은 오직 이것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소식의 〈동파지림 東坡志林〉을 인용하여 아이들이 〈삼국지연의〉를 들으면서는 울어도, 진수의 〈삼국지〉를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여 소설이 주는 재미와 감동의 힘을 긍정하였다. 이 때문에 그 자신이〈구운몽〉·〈사씨남정기〉같은 소설을 직접 창작할 수 있었다.
구운몽
김만중이 1687년 선천 유배 시절 어머니 윤씨 부인의 한가함과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지었다고 전해지는 한국 고소설의 대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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